더블오 건담 프라모델 (HG MG RG PG 비교, 세츠나 성장 서사)

솔직히 저는 더블오 건담 프라모델을 처음 만들었을 때 이게 1,000엔짜리 HG라는 게 믿기지 않았습니다. 2008년 당시 다른 건프라들과 비교하면 가동 범위나 조형미가 한 등급 위라는 느낌을 받았거든요. 그 이후로 저는 더블오라이저의 모든 등급을 만들어봤는데, 등급마다 장단점이 확실해서 어떤 게 최고라고 단정하기 어려웠습니다. 더블오 건담은 단순히 프라모델로만 기억되는 기체가 아닙니다. 세츠나라는 캐릭터의 성장과 인류 혁신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함께 담고 있는, 기동전사 건담 OO 시리즈의 상징이기도 하죠.

리본즈가 더블오를 탐낸 진짜 이유

더블오 건담을 둘러싼 이야기 중 많은 분들이 오해하는 부분이 하나 있습니다. 리본즈 알마크가 더블오를 처음엔 무시하다가 나중에 탐냈다는 점인데, 이게 앞뒤가 안 맞는다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계시더라고요. 저도 처음엔 그랬습니다. 그런데 작중 흐름을 자세히 따라가보면 리본즈의 판단이 일관성 있게 변화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리본즈가 더블오를 별 것 아니라고 판단한 시점은 오라이저(O-Raiser)라는 보조 유닛이 없는, 더블오 건담 단독 성능만 봤을 때입니다. 초반부에 등장한 가뎃사나 가랏조 같은 이노베이터 전용기들과 비교했을 때, 트윈 드라이브(Twin Drive) 시스템을 장착했다고는 해도 그 잠재력이 완전히 발현되지 않은 상태였죠. 트윈 드라이브란 두 개의 GN 드라이브를 동시에 가동해 기하급수적으로 출력을 높이는 시스템을 뜻합니다. 하지만 오라이저 없이는 그 시너지가 제대로 나오지 않았던 겁니다.

상황이 완전히 바뀐 건 오라이저와 도킹한 이후입니다. 더블오 라이저(00 Raiser)로 합체한 순간, 더블오는 어마어마한 성능을 보여줬고 심지어 양자화(Quantization)라는 초월적 현상까지 일으켰습니다. 양자화란 기체가 입자 단위로 분해되어 물리적 공격을 무효화하고 순간 이동하는 능력인데, 이건 리본즈조차 예상하지 못한 영역이었죠. 그제야 리본즈는 더블오와 오라이저를 동시에 탐내기 시작했습니다. 당연히 세츠나가 순순히 건넬 리 없었고, 리본즈는 아뉴 리턴너와 리바이브 리바이벌까지 동원해 강탈을 시도했지만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결국 리본즈는 아뉴가 빼돌린 트윈 드라이브 시스템 데이터를 바탕으로, 무수히 많이 제작한 유사 태양로(Pseudo Solar Reactor) 중에서 궁합이 잘 맞는 두 개를 골라 리본즈 건담을 만들어냈습니다. 유사 태양로란 진짜 태양로인 GN 드라이브를 모방해 만든 동력원으로, 성능은 떨어지지만 대량 생산이 가능하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이 과정을 보면 리본즈의 집착이 얼마나 컸는지 알 수 있습니다.

HG MG RG PG 모두 만들어본 솔직 후기

저는 더블오라이저의 HG, MG, RG, PG를 모두 조립해봤습니다. 각 등급마다 확실한 개성이 있어서 어떤 걸 추천할지 고민이 많았는데, 결론부터 말하면 전체적인 밸런스는 MG(Master Grade)가 가장 좋다고 봅니다. 물론 각 등급마다 장단점이 명확하니 하나씩 짚어보겠습니다.

HG(High Grade)는 당시대의 혁신 그 자체였습니다. 1,000엔이라는 저렴한 가격에 MG나 PG를 능가하는 가동성을 보여줬고, 2008년 건프라 시장에 큰 충격을 줬죠. 반다이가 기동전사 건담 시드 데스티니 프라모델의 품질 논란 이후 시즌제를 도입해 개발 기간을 충분히 확보한 덕분이었습니다. 하지만 인기가 너무 많아 금형을 과도하게 사용한 탓에, 후반 제품에서는 지느러미 현상(파팅 라인 주변 플라스틱이 얇게 튀어나오는 현상)이 발생했습니다.

RG(Real Grade)는 조금 육중해진 체형이지만 포즈를 잡으면 그게 잘 안 보이고, 외장 디테일과 가동 범위가 MG보다도 좋습니다. 무게도 가벼워서 어떤 포즈를 잡아도 잘 지탱되는 편이죠. 다만 얼굴 부분이 초창기 RG 특유의 슬릿 구조로 되어 있어서, 간격이 넓어 자세히 보면 잘생김이 좀 덜합니다. RG 더블오 라이저는 새로운 프레임을 적용했고, 8년 후 출시된 엑시아 RG의 품질이 더 좋았다는 평가도 있습니다.

PG(Perfect Grade)는 나올 당시 조형과 디테일, 트윈 드라이브의 모터와 LED 기믹에 감탄했습니다. 하지만 무거운 무게를 스스로 감당하지 못하고, 오라이저를 장착한 트윈 드라이브 부분도 무게를 견디지 못하는 치명적 단점이 있었습니다. 베이스가 초회 한정인 것도 큰 문제였죠. PG는 스탠드 없이는 포즈 잡기가 거의 불가능한데, 베이스 연결부가 무겁고 거대한 덩치에 비해 턱없이 작았습니다. 제가 5년 정도 같은 포즈로 전시했더니 베이스 연결부가 그냥 부러져버렸습니다. 중국산 베이스를 다시 사서 전시했지만, 이제는 역동적인 포즈를 잡을 엄두가 안 나더라고요.

MG는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여러 부분에서의 밸런스가 가장 좋습니다. 내부 프레임이 후속기인 더블오 퀀터에도 사용되면서 비대칭 무게로 인해 기체가 기울어지는 문제가 있긴 했지만, 조형미와 가동성, 안정성을 종합하면 MG가 최선이라고 봅니다. 더블오 키트 전반의 문제는 기체 무게로 인한 약한 관절 강도였는데, MG는 그나마 이 부분을 잘 절충했습니다.

  1. HG: 당시 혁신적이었으나 후기 금형 문제 발생
  2. MG: 전체 밸런스 최고, 조형과 안정성 양호
  3. RG: 디테일과 가동성 우수하나 얼굴 디자인 아쉬움
  4. PG: 기믹은 화려하나 무게 문제로 전시 불안정

세츠나의 우직한 진화와 더블오의 서사적 의미

제가 느낀 세츠나 F. 세이에이라는 캐릭터는, 변혁을 위해 기존 상식에 얽매이지 않고 어리석고 무모해 보일 정도로 우직하게 나아가 끝내 진화한 인물입니다. 작중에서 세츠나는 이안 바스티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트란잠(Trans-Am)을 무리하게 사용하는 등 남의 말을 듣지 않는 고집스러운 면모를 보입니다. 트란잠이란 GN 드라이브에 축적된 입자를 한꺼번에 방출해 기체 성능을 3배까지 끌어올리는 시스템인데, 시간 제한 후에는 성능이 급격히 저하되는 위험한 기능이죠.

더블오 건담은 세츠나에게 전쟁 근절이라는 이상을 가르쳐 준 O 건담과 대비되는 존재였습니다. 더블오는 세츠나의 해답이었지만 완전히 자신의 것은 아니었고, 언젠가 극복해야 할 숙제였죠. 최종 전투에서 리본즈 건담에게 파괴되며 최강 기체라는 테마가 깨지는데, 이는 세츠나의 운명과 서사적 의미를 반영한 연출이라고 봅니다. GN 드라이브의 파괴는 세츠나에게 전쟁의 근절이라는 과거 유산을 버리고 인류 혁신이라는 새로운 이상을 선택하라는 의미였습니다.

더블오라이저 자체만 놓고 보면, 저는 세츠나의 질문에 대한 해답이라고 생각합니다. 더블오 건담이 세츠나의 이상과 현실이 합쳐진 문제였다면, 더블오라이저는 세츠나가 내놓은 문제의 해답인 '소통'을 상징하는 기체죠. 트랜스암 라이저 풀 버스트(Trans-Am Raiser Full Burst) 시 고농도 GN 입자가 확산되어 의식 공유 및 치료 효과를 가지는데, 이것이 바로 소통의 물리적 구현이었습니다.

극장판에서 더블오라이저가 허무하게 박살 난 건, 다른 존재로 홀로 진화한 세츠나가 스스로 벽을 세웠고 그것이 틀렸다는 걸 보여준 장면이 아닐까 합니다. ELS(Extraterrestrial Living-metal Shape-shifter)의 위협에 맞서 파티클 탱크를 장착한 더블오 라이저로 전투에 임했지만, ELS와의 과도한 정보 접촉으로 의식을 잃고 뇌 손상까지 입었죠. ELS란 금속 생명체로, 접촉을 통해 정보를 공유하는 외계 존재입니다. 티에리아 아데의 희생으로 간신히 생존한 세츠나는, 동료들의 희생을 통해 인류 혁신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고 더블오 퀀터(00 Qan[T])에 탑승해 온 우주의 혁신을 위한 새로운 전투를 시작합니다.

우리의 상식이 혁신과 변화의 장애물이 될 수 있다는 걸, 저는 세츠나를 통해 새삼 느꼈습니다. 세츠나는 동료들과의 차이와 인류의 미성숙함에 두려움을 느끼며 혁신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했지만, 결국 그 두려움을 넘어섰죠. 더블오 건담이라는 기체는 단순한 메카닉이 아니라, 세츠나의 성장과 인류의 가능성을 담은 상징이었습니다. 제가 프라모델을 만들며 이 캐릭터와 기체에 애착을 갖게 된 이유도 바로 이런 깊이 있는 서사 덕분입니다.

더블오 건담 프라모델은 각 등급마다 명확한 장단점이 있지만, 어떤 등급을 선택하든 이 기체가 담고 있는 의미를 함께 느낄 수 있습니다. 저는 앞으로도 가끔씩 선반에 꽂힌 MG 더블오라이저를 보며, 세츠나의 우직한 여정과 제가 건프라를 조립하며 느꼈던 설렘을 떠올릴 것 같습니다. 더블오 시리즈를 좋아하신다면, 프라모델을 직접 만들어보시는 걸 추천합니다. 조립 과정에서 기체의 구조를 이해하고, 그 안에 담긴 이야기를 더 깊이 느낄 수 있으니까요.

---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JDv9rWvZf3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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