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P 시리즈 건담 (핵무장 MS, 덴드로비움, 설정 모순)
연방군이 1년 전쟁 이후 극비리에 핵무기를 탑재한 모빌슈트를 개발했다는 사실, 알고 계셨습니까? 저는 국민학교 시절 비디오가게에서 건담 0083 극장판을 처음 접했을 때, GP02 사이사리스의 아토믹 바주카를 보고 정말 충격을 받았습니다. 남극 조약을 정면으로 위반하는 핵무장 건담이라니, 당시엔 그저 멋있다는 생각만 했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연방의 이중성을 드러낸 작품이었습니다. 고등학교 때 TV판을 다운받아 다시 보면서 GP 시리즈의 개발 배경과 각 기체의 특징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었고, 지금까지도 가장 좋아하는 건담 시리즈로 남아있습니다.
GP 시리즈의 탄생과 애너하임의 기술 독점
U.C. 0081년, 지구 연방은 지온 잔당 세력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존 코웬 중장 지휘 아래 극비 프로젝트를 시작합니다. 애너하임 일렉트로닉스(AE)와 협력한 이 프로젝트는 GP(건담 개발 계획) 시리즈로, 사실상 남극 조약을 위반하는 불법 군비 확장이었습니다. 애너하임은 1년 전쟁 직후 지오닉사를 인수 합병하면서 모빌슈트 산업을 사실상 독점했고, 지온의 기술자들을 적극 채용해 연방과 지온 양측의 기술을 모두 확보한 상태였습니다.
연방은 1년 전쟁에서 승리했지만, 모빌슈트 기술 전반에서는 지온에 비해 약 10년 뒤처져 있었습니다. 빔 병기 분야에서는 우위를 점했으나, 기동성이나 범용성 면에서는 여전히 부족했던 겁니다. 이 격차를 해소하기 위해 연방은 애너하임의 자회사 CLUB WORKS에 설계를 맡겼고, 각 기체마다 '개화'를 의미하는 '블로섬(GP-00)'을 시작으로 꽃 관련 코드명을 붙였습니다. 제가 보기엔 이런 우아한 작명 센스가 오히려 프로젝트의 불법성을 은폐하려는 의도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애너하임의 기술력은 단순히 연방의 데이터만으로는 구현할 수 없었던 수준이었습니다. 연방이 지온의 기술 데이터를 확보했다 해도, 그걸 실제로 활용할 인력과 노하우가 부족했던 거죠. 결국 지온 기술자들을 품은 애너하임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고, 이는 훗날 애너하임이 연방과 지온 양측에 무기를 공급하는 '죽음의 상인' 역할을 하게 되는 배경이 됩니다.
GP02 사이사리스, 핵무장 건담의 탄생
GP02 '사이사리스'는 애너하임 내 지온 기술에 정통한 제2연구부에서 개발한 기체로, '꽈리(Physalis)'에서 이름을 따왔습니다. 원래는 다양한 탄두를 탑재하고 호버링하는 범용 기체로 계획됐으나, 연방의 핵무기 운용 의도가 반영되면서 핵무장 모빌슈트로 설계가 변경됐습니다. 코드명 'A'가 붙은 건 핵무장(Atomic)을 의미했고, 남극 조약을 정면으로 위반하는 전략 핵무기 마크 82를 탑재했습니다.
핵무장 모빌슈트의 가장 큰 기술적 난제는 발사 후 생존성이었습니다. 탄두를 발사하면 모빌슈트 자체가 핵폭발 반경 안에 갇히는 위험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GP02는 중무장 구조로 설계됐고, 방패에는 냉각 장치, 조종석에는 중성자 감속재(Neutron Moderator)가 적용됐습니다. 중성자 감속재란 핵반응에서 방출되는 고속 중성자의 속도를 늦춰 방사선 피해를 줄이는 물질을 뜻합니다. 쉽게 말해 조종사를 방사능으로부터 보호하는 일종의 차폐막인 셈이죠.
저는 GP02의 디자인이 다른 건담들과 확연히 다르다는 점에서 매력을 느꼈습니다. 건담답지 않은 투박한 얼굴, 플렉시블 바인더로 불리는 대형 추진기 날개는 제2연구부의 지온 기술자들이 디자인에 참여했기 때문입니다. 플렉시블 바인더(Flexible Binder)는 우주 공간에서 추진력을 확보하기 위한 가변 추진기로, 훗날 릭 디아스나 백식의 스러스터 바인더로 이어지는 기술이 됩니다. 실제로 캡슐파이터에서 GP02를 사용해봤을 때, 중거리형 포지션임에도 무장이 빔 사벨, 발칸포, 방패밀치기 정도에 불과해서 필살기인 아토믹 바주카 하나만 믿고 써야 하는 기묘한 기체였습니다. 그래서 차라리 게임에 등장하는 MLRS(다연장 로켓) 무장이 더 낫다는 평가도 있었죠. 하지만 필살기 강화 아이템을 끼면 한 방에 적을 빈사 상태로 만들 수 있어서, 생각보다 사용자가 꽤 있었습니다.
덴드로비움과 프라모델의 역사
GP03 '덴드로비움'은 GP 시리즈의 최종 병기로, 라 비앙 로즈 개발 콜로니에서 루세트 오데비의 지휘 아래 완성됐습니다. 저는 십수 년간 덴드로비움의 MG나 RG 제품이 나오길 간절히 바라는 팬 중 하나입니다. 작중 라이벌 기체인 노이에질은 1/550 스케일만 있는 걸로 기억하는데, 두 기체 모두 당시 기술력의 정점을 보여주는 만큼 비싸고 한정판이더라도 PG 뉴건담, 사자비와 더불어 프라모델계의 끝판왕 급으로 나와줬으면 하는 기대가 있습니다.
GP 시리즈 프라모델의 역사를 보면, 초기 제품들은 팬들에게 호평받지 못했습니다. 특히 GP01 제피랜서스는 F91의 혁신적인 품질과 비교되며 외면받았죠. 하지만 1997년 출시된 MG GP01은 저렴한 가격과 높은 품질로 명성을 얻었고, GP01 풀 버니언 키트는 머리와 팔을 제외한 제피랜서스 전체 부품이 포함돼 런너 활용도가 높았습니다. 제가 직접 조립해본 2003년 PG는 제피랜서스와 풀 버니언 교체식이었지만, 비율 문제와 복잡한 전선 작업 때문에 난이도가 꽤 높았습니다.
GP02의 경우 초기 모델은 못생긴 얼굴과 엉망인 색상으로 '폭탄' 취급을 받았으나, 1998년 MG는 팬들에게 필수 키트로 여겨졌습니다. 다만 방패가 포함되지 않아 아쉬움이 컸고, 현재도 해당 방패를 들기 어려운 구조적 문제가 남아있습니다. 2000년 HGUC는 두 유닛의 노하우를 통합해 단점을 개선했고, MG가 카토키 하지메의 상업화였다면 HG는 카와모리 쇼지의 원작 설정을 유지한 것으로 평가받습니다. 야간 사양, MLRS 사양 등 다양한 파생 키트가 출시됐지만 현재는 구하기 어렵고, SD GP02는 귀여운 디자인과 좋은 가동성, 색 분할로 선물용으로 인기가 많았습니다. 저를 포함한 많은 팬들이 GP02의 새로운 버전, 2.0이나 RG 출시를 학수고대하고 있습니다.
0083의 설정 논란과 후대 작품에 미친 영향
건담 0083은 뛰어난 작화와 연출로 유명하지만, 설정 면에서는 논란이 많습니다. 제가 보기엔 이래서 건담 설정이 개판이라는 소리가 나오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1년 전쟁 후반기를 배경으로 하는 다른 외전 작품들에서는 이미 퍼펙트 건담은 물론 지온의 릭돔이나 겔구그와 맞먹거나 상회하는 성능의 모빌슈트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던 터라, 연방이 기술적으로 꿀릴 게 없었습니다. 연방이 지온보다 뒤처진 건 뉴타입 연구와 사이코뮤 탑재 병기 정도였을 뿐, 그 외에는 밀릴 게 없었는데 0083에서는 또 지온을 앞에 두고 쩔쩔매는 모습을 보여주니 제각각인 느낌이 강합니다.
특히 NT-1에서는 이미 전방위 사각이 없는 파노라마 콕핏(Panoramic Cockpit)을 완성한 상태로 나왔는데, GP 시리즈에서는 다시 예전 건담 조종 시스템과 동일한 좁은 콕핏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파노라마 콕핏이란 조종석 전면에 대형 모니터를 배치해 360도 시야를 확보하는 시스템을 뜻합니다. 쉽게 말해 사각지대 없이 주변을 모두 볼 수 있는 미래형 조종석인 셈이죠. 이런 걸 보면 서로 다른 세계관을 보여주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선라이즈가 건담 사업을 되살리기 위해 토미노 감독에게 F91을 의뢰하고, 동시에 0083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기획 부족으로 인한 모순이 생긴 게 아닌가 싶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1화에서 가토를 알아보지 못하는 니나의 설정이 나중에 가토의 연인이었다는 사실과 충돌하는 부분입니다.
그럼에도 0083은 후대 건담 시리즈에 많은 영향을 줬습니다. 솔직히 지금 보니 시드 시리즈에 상당한 모티브를 제공한 것 같습니다. 핵을 운용하는 컨셉, 여러 대의 실험용 건담들, 지온이 건담을 탈취한다는 설정, 건담끼리의 전투 같은 요소들 말이죠. 미티어도 덴드로비움에서 가져온 게 분명합니다. 0083은 여러 건담 디자인과 당시의 넘치는 경제력으로 뛰어난 퀄리티를 자랑해, 지금 봐도 눈이 즐거운 작품입니다(출처: 건담베이스).
결국 건담 0083의 GP 시리즈는 설정상 모순과 논란에도 불구하고, 건담 팬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긴 작품입니다. 저 역시 2호기 사이사리스를 더 좋아했고, 지금도 덴드로비움의 MG나 RG 출시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건담에 입문하려 한다면, 0083은 작화와 메카닉 디자인 면에서 꼭 한 번 볼 만한 작품입니다. 다만 설정 논란을 염두에 두고 감상하시길 권합니다. 프라모델 수집을 고려하신다면, GP02의 새 버전 출시 소식을 주시하는 것도 좋겠습니다.
---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gfep49nJJq8
댓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