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78 풀 아머 건담 (리얼리즘, MG 조립, 썬더볼트)
건담이 전쟁 병기라는 사실을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준 작품을 꼽으라면 저는 주저 없이 '기동전사 건담 썬더볼트'를 말합니다. 그 중심에 있는 FA-78 풀 아머 건담은 08소대 이후로 제가 가장 좋아하는 기체가 되었습니다. 재즈가 흐르는 가운데 적을 학살하는 이오 플레밍의 모습은 건담이 단순한 영웅 로봇이 아니라 죽이기 위해 설계된 병기임을 확실히 각인시켰습니다. 이 작품을 보고 처음으로 건프라에 손을 댔고, 심지어 제 첫 MG가 바로 이 풀 아머 건담이었는데 정말 고생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리얼리즘을 극한으로 밀어붙인 설계 철학
풀 아머 건담의 가장 큰 매력은 작가 오타가키 야스오 특유의 극사실주의 설계입니다. 빅 코믹 슈페리어라는 성인 취향 만화 레이블에 연재되었던 만큼, 이 작품은 우주 공간에서의 물리 법칙을 철저히 반영했습니다. '문라이트 마일'로 유명한 작가답게 치밀한 우주 묘사가 돋보이는데, 특히 중량 제어를 위한 대형 로켓 부스터 설계는 퍼스트 건담의 오랜 논란에 대한 명쾌한 답변이었습니다.
오리지널 건담은 버니어(Vernier)나 스러스터(Thruster) 없이 자세를 제어한다는 설정 때문에 리얼리티 논란이 있었습니다. 여기서 버니어란 우주 공간에서 기체의 자세와 방향을 미세하게 조정하는 소형 분사 장치를 뜻합니다. 풀 아머 건담은 이 문제를 정면 돌파했습니다. 다수의 스러스터는 일부가 손상되어도 귀환할 수 있도록 설계된 예비 장치이며, 4개의 실드는 고출력 빔을 여러 겹으로 방어하기 위한 현실적인 대응책입니다. 외장이 파손되면 데드 웨이트(Dead Weight), 즉 쓸모없는 무게를 줄이기 위해 과감히 버릴 수 있도록 만들어진 점도 인상적입니다.
제가 가장 놀랐던 건 관절과 백팩의 특이한 디자인이었습니다. 썬더볼트 지역은 전쟁으로 파괴된 콜로니 잔해들이 떠다니며 끊임없이 스파크가 발생하는 곳으로, 아 바오아 쿠로 이어지는 중요한 보급로였습니다. 이런 환경에서 우주 데브리(Debris), 즉 우주 쓰레기가 기체 내부로 유입되는 것을 막기 위한 극사실주의적 설계가 곳곳에 녹아있습니다. 08소대에서 건담에 짐 머리를 단다는 묘사를 봤을 때와 비슷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건담스럽지 않지만 전쟁 병기로서는 너무나 당연한 선택이었으니까요.
MG 조립기: 비닐 파츠와의 전쟁
서울 코믹콘 상영 스테이지에서 썬더볼트를 처음 봤을 때 바로 건프라를 주문했습니다. 당시 저는 건담 영상만 보고 건프라는 한 번도 만들어본 적이 없었는데, HG 대신 바로 MG에 도전했다가 크게 고생했습니다. 풀 아머 건담 MG는 오리진 퍼스트와 유사한 내부 프레임 설계와 부품의 완전 분할이 인상적이었지만, 가장 큰 난관은 따로 있었습니다.
바로 관절의 비닐 작업입니다. 성인용 제품답게 직접 가위로 자르고 리얼하게 구겨 넣어야 하는데, 이게 진짜 다시는 안 하겠다고 생각할 정도로 힘들었습니다. 비닐 씰링(Sealing)이란 우주복이나 기체의 관절 부위를 밀폐하는 고무 재질의 보호막을 뜻하는데, 실제 우주복에도 사용되는 현실적인 요소입니다. 문제는 이걸 1/100 스케일 모형에 그대로 재현하려다 보니 조립 난이도가 상급자 수준으로 올라간 겁니다. 손가락 끝에 힘을 주다가 파츠가 튕겨나가기도 하고, 비닐이 제대로 안 끼워져서 몇 번이고 다시 시도했던 기억이 납니다.
HG 모델도 만만치 않습니다. 당시 높은 가격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디테일과 오리지널 금형을 사용했는데, 아이들용 건담과 달리 성인 대상 콘셉트로 설계되어 뿔 등 디테일이 날카롭게 표현되었습니다. 다만 뛰어난 디테일과 많은 무장 때문에 무게로 인한 처짐이 단점으로 지적됩니다. 결국 저는 고생 끝에 MG를 완성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사이코 자쿠에서 비닐 씰링을 한 번 더 하게 되었습니다. MG 사이즈는 PG보다 작지만 라이벌 사이코 자쿠는 거대한 크기를 자랑해서 부동산 문제까지 거론될 정도였으니까요.
- MG 풀 아머 건담: 오리진 프레임 기반, 비닐 씰링 필수, 상급자 추천
- HG 풀 아머 건담: 오리지널 금형, 날카로운 디테일, 무게 처짐 주의
- MG 사이코 자쿠: 대형 사이즈, 비닐 작업 재현, 보관 공간 필수
썬더볼트 1기가 남긴 육중한 여운
"이오 플레밍 소위다. 재즈가 들린다면, 내가 왔다는 신호다." 이 대사와 함께 펼쳐지는 전투 장면은 풀 아머 건담과 사이코 자쿠 특유의 육중한 맛을 완벽하게 표현했습니다. 이오 플레밍은 1년 전쟁 중 지온의 학살에서 살아남은 무어 콜로니 생존자로, 플레밍 가문이 통치하는 기업 콜로니의 금수저 출신이었습니다. 하지만 특유의 성격과 PTSD 때문에 특권에 안주하지 않았고, 심지어 아군마저 인질로 삼을 정도로 문제가 많은 인물이었습니다.
다릴 로렌츠에게 탑승하던 짐이 격추된 후 코어 파이터 블록으로 탈출해 적의 릭 돔을 강탈한 이오는 복수를 맹세하고 부대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부대에 배치된 풀 아머 건담으로 썬더볼트 지역의 리빙데드 부대를 단독으로 학살합니다. 지온의 리빙데드 부대는 신체 일부를 잃은 병사들로 구성된 부대로, 이 지역 방어를 담당하고 있었습니다(출처: 유튜브 원본 영상). 자쿠 파일럿 시점에서 그려진 공포는 정말 명장면이었습니다. 제가 타르코프에서 열심히 돈 모아 풀 장비를 갖추는 느낌과 비슷했달까요. 완벽하게 무장한 상태로 적을 압도하는 그 쾌감 말입니다.
다릴과의 최종 결전에서 승리하는 듯했지만 번개로 인한 다릴의 반격으로 무승부가 되었고, 풀 아머 건담은 세이렌 부대에 나포됩니다. 이오는 고문을 당했지만 아 바오아 쿠 전투의 혼란을 틈타 탈출에 성공했고, 이후 아틀라스 건담의 파일럿이 됩니다. 나포된 풀 아머 건담은 리빙 데드의 클라우버를 거쳐 다릴에게 넘어가 '퍼펙트 건담'의 부품으로 활용되었습니다. 아틀라스 건담은 미래지향적인 디자인이지만 썬더볼트 1기 특유의 육중한 맛은 없었습니다. 심지어 이오가 퍼펙트 지옹을 타는 등 설정 문제로 인기가 떨어졌죠. 풀 아머 건담과 사이코 자쿠가 등장하는 1기가 압도적으로 인기가 높았던 이유는 바로 이 리얼리즘과 육중함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리얼리티 추구를 위해 비닐 파츠까지 넣는 뚝심 있는 크리에이터와 그걸 받쳐주는 회사가 더 많아지면 좋겠습니다. 건담은 아무리 낭만을 넣어봐야 결국 죽고 죽이는 전쟁이고, 건담도 아무리 날고 기어봐야 전쟁 병기일 뿐이니까요. 풀 아머 건담은 그 사실을 가장 솔직하게 보여준 작품 속 상징이자, 제게는 첫 MG로서 평생 잊지 못할 경험이 되었습니다. 만약 건프라에 입문하려는 분이라면 HG부터 시작하길 권하지만, 도전 정신이 있다면 MG 풀 아머 건담으로 리얼리즘의 진수를 느껴보시길 추천합니다.
---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cta9cRtnHd0풀아머건담, 건담썬더볼트, 건프라MG, 이오플레밍, 사이코자쿠, 리빙데드부대, 건담모형
댓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