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담 헤비암즈 (중무장 컨셉, EW 리파인, 실전 한계)

투니버스에서 처음 건담W를 봤을 때 온갖 중화기가 주렁주렁 달린 헤비암즈에 무작정 반했던 기억이 납니다. 당시엔 니퍼도 없이 가위로 런너를 자르며 며칠 밤을 새워 조립했고, 전탄발사 자세로 포징했을 때의 성취감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다만 실제로 설정을 파고들수록 이 기체가 가진 구조적 한계와 매력이 동시에 보이더군요. 묵직한 중무장형 건담을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한번쯤 이 기체의 컨셉과 실전 운용에 대해 고민해보셨을 겁니다.

중무장 컨셉의 탄생과 작전 변경

XXXG-01H 건담 헤비암즈(Gundam Heavyarms)는 A.C. 195년 오퍼레이션 메테오(Operation Meteor)를 위해 닥터 S가 개발한 기체로, 이름 그대로 '중무장'을 의미합니다. 원래 이 기체는 콜로니를 지구에 떨어뜨린 후 초토화된 행성을 진압하는 '진정한 오퍼레이션 메테오'를 위해 설계되었습니다. 전함 3~5척 분량의 화력으로 적진을 섬멸하고 거점을 제압하는 단기전용 건담이었던 셈이죠.

그런데 계획이 변경되면서 문제가 생겼습니다. 본래 파일럿이었던 진짜 트로와 바톤은 데킴 바톤의 아들로 대량 학살을 원했지만, 개발자들은 식민지 독립만을 목표로 했습니다. 결국 진짜 트로와는 살해당하고, '이름 없음'이라 불리던 소년이 그의 신분을 얻어 헤비암즈에 탑승하게 됩니다. 이 소년의 목표는 학살이 아닌 독립이었고, 메테오 작전은 국지적 테러 캠페인으로 축소되었습니다. 단기전 거점 제압용으로 설계된 건담이 중장기 화력전에 투입되면서, 탄약 소진이라는 치명적 약점이 부각되기 시작했습니다(출처: Gundam Wiki).

제가 TV판을 봤을 때도 이 아이러니가 느껴졌습니다. 건담치고는 레알 결함이 많은 기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건담의 강력한 출력을 전혀 살리지 못하는데, 트로와의 실력으로 어거지로 끌어다 쓰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런데 순간 화력만큼은 확실히 이펙트가 강했습니다. '건담인데 약하다고? 그건 화력이 부족하기 때문이야! 더 많은 미사일과 무장을!'이라는 컨셉 자체는 정말 제 취향이었습니다.

EW 리파인이 가져온 변화

TV판에서는 컨셉답지 않게 외부 무장이 많지 않아서 아쉬웠는데, 엔들리스 왈츠(Endless Waltz, EW)에서 진정으로 컨셉에 맞는 무장을 보여줘서 정말 좋아했습니다. 카토키 하지메가 재설계한 EW 버전은 기체를 더욱 유명하게 만들었고, 트로와의 상징인 피에로를 닮은 독특한 외형을 가졌습니다. 피에로 마스크(Clown Mask)는 OVA 독점 장식으로 실제 기능은 없고 센서 하나를 가리는 디자인이지만, 시각적 임팩트는 확실했습니다.

무장 구성도 크게 달라졌습니다. TV 버전은 빔 개틀링 건(Beam Gatling Gun)을 사용했지만, EW 버전은 실탄을 사용합니다. 심지어 빔 개틀링도 실탄에 입자를 채웠다는 요상한 설정이 붙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왜 하필 빔이 아니라 실탄인가 싶었습니다. 주요 무장 차이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 TV 버전: 빔 개틀링 건(양손), 가슴 개틀링 건, 어깨 컨테이너 호밍 미사일
  2. EW 버전: 실탄 개틀링(양손), 가슴 개틀링, 다리 호밍 미사일, 마이크로 미사일 추가
  3. 헤비암즈 카이(Kai): 더블 빔 개틀링(TV), 더블 개틀링(EW)

EW 버전은 TV 버전보다 훨씬 화려한 움직임을 보여줬습니다. 모든 건담 게임에 등장하면 무조건 공중 서커스를 보여주는 헤비암즈 EW... 온갖 비상식이 넘치는 건담이지만 화력 뽕 하나에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 매력을 지닌 각도기씨의 회심의 리파인이었습니다. 아마 EW가 안 나왔다면 아직도 헤비암즈는 잊혀졌을 듯합니다. 더블 개틀링 마이크로 미사일이 매력적인 기체 풀 해치 오픈... 마크로스 발키리를 보는 것 같은 화력 기체였습니다.

실전 운용의 한계와 프라모델화

하지만 실전 운용에서 한계는 명확했습니다. 탄약 소진 시 오른팔의 아미 나이프(Army Knife)가 유일한 무기라는 치명적 약점이 있었습니다. 아미 나이프는 EW 버전에는 없고 소설판에만 존재하지만, 건프라에는 포함되었습니다. 둔중한 기체 특성과 높은 피탄율을 보완하기 위해 건다리움 합금(Gundarium Alloy)을 사용했지만 큰 도움이 되지 못했습니다. 건다리움 합금이란 건담 시리즈에서 등장하는 초합금 소재로, 일반 장갑보다 훨씬 강한 내구성을 자랑하지만 헤비암즈의 구조적 한계를 완전히 상쇄하지는 못했습니다.

게다가 트로와 바톤도 근중거리 화력계가 아니라 한 발 한 발 정확히 쏘는 장거리 화력 지원형이 더 잘 어울리는데, EW 끝까지 가서도 근중거리 화력계만 썼습니다. 제 생각에는 이 부분이 가장 아쉬웠습니다. 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는데, 저는 오히려 트로와의 곡예 기동과 정밀 사격 능력이 이 기체의 약점을 극대치로 끌어올린 케이스라고 봅니다. 실제로 TV판을 보면 트로와는 가장 먼저 위기를 맞이하며, 탄약 보급 문제로 인해 직접 시설을 파괴하고 스스로 탄약을 조달하면서 화력에 제한이 걸렸습니다.

프라모델 상품화는 헤비암즈의 또 다른 이야기입니다. 샌드록과 헤비암즈만 TV 버전으로 1/100 스케일이 출시되지 않았으며, 헤비암즈 카이는 유일하게 없었습니다. 헤비암즈 독(Gundam Heavyarms Custom)은 낮은 인기로 인해 프라모델이 프리미엄 반다이 한정판으로만 발매되었으나, 2020년에 HGAC(High Grade After Colony)가 일반판으로 발매되었습니다. HGAC 헤비암즈는 가슴의 파란색 부분 도색이 어렵다는 단점이 있었고, 2022년에는 헤비암즈 카이가 처음으로 프라모델로 발매되었으나 역시 프리미엄 반다이 한정판이었습니다.

MG(Master Grade)는 일반 버전과 한정판 EW 버전이 있었고, 일반 버전은 금형 문제로 아미 나이프 위치와 개틀링 외부 방패가 달랐습니다. 패자들의 영광(Loser's Glory) 버전은 아미 나이프 위치가 다르고 개틀링 외부에 방패를 추가했으며, 빔 사벨(Beam Saber)이 포함되었습니다. EW 버전 한정판은 무기고가 화려하지 않으며, 피에로 마스크가 단색 부품인 것이 아쉬웠습니다.

트로와는 마지막에 데킴 바톤이 메테오 작전을 실행한다는 것을 깨닫고 암살하려 했으나 우페이에게 저지당합니다. 데킴과 한편인 척하며 내부 데이터를 훔치고, 다른 파일럿들과 합류하여 마리메이어를 막는 싸움에 참여했습니다. 메테오 작전을 막은 후 전쟁의 상징인 헤비암즈를 파괴하고 서커스로 돌아갔고, 캐서린이 전쟁에서 잃은 형제의 이름인 '트리톤'으로 개명하며 전쟁의 기억에서 완전히 벗어났습니다.

지금도 제 방에는 어릴 때 조립했던 헤비암즈가 보관되어 있습니다. 매력적인 기체는 많은데 장점을 살리지 못했다는 의견도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TV판을 엔드리스 왈츠만큼만 만들었다면 하는 아쉬움이 더 큽니다. 오프닝에 나온 건담 에피온과 건담 윙의 대결 장면에 낚였던 작품이었지만, 헤비암즈만큼은 여전히 애착이 가는 기체입니다. 어린 시절 트로와가 제일 마음에 들었던 이유도, 기체 디자인과 별개로 뭔가 등장인물 중에 제일 사람 같았기 때문이었습니다.

---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wuaA70Lbtbg 건담W, 헤비암즈, 엔들리스왈츠, 트로와바톤, 중무장건담, 건프라, HGA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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