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바토스 건담 (악마 모티브, 아뢰야식, 루프스 렉스)
건담 시리즈를 보면서 주인공 기체가 천사도 아니고 악마 이름을 달고 나온다는 게 처음엔 좀 낯설었습니다. 엑시아가 하늘에서 내려오는 천사라면, 발바토스는 땅을 뚫고 올라온 악마였으니까요. 솔직히 제게 철혈의 오펀스는 기체 디자인과 실탄 액션만큼은 완벽했지만, 스토리 후반부로 갈수록 썩 유쾌하지 않은 뒷맛을 남긴 작품이었습니다. 발바토스라는 기체 자체는 정말 매력적이었는데, 그 결말이 너무 씁쓸했거든요.
솔로몬 72 악마에서 따온 발바토스, 왜 악마인가
발바토스(Barbatos)라는 이름은 솔로몬 왕이 봉인했다는 72 악마 중 8번째 악마 '바르바토스'에서 유래했습니다. 여기서 솔로몬의 72 악마란 중세 마법서 '레메게톤'에 등장하는 악마들의 명단으로, 각기 다른 능력과 상징을 지닌 악마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쉽게 말해 서양 판타지에서 자주 쓰이는 악마 이름 사전 같은 거죠.
바르바토스는 원래 천사였다가 타락한 존재로, 절망·잔인함·무자비함 같은 어두운 영역을 관장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동시에 다재다능한 웅변가이자 숲의 수호자로도 묘사되는데, 영국 민속에선 로빈 후드의 정체가 바르바토스라는 전설도 있습니다. 제작진은 이 모든 특성을 발바토스 건담에 녹여냈습니다. 걀라르호른(Gjallarhorn)이라는 지배 세력에 맞서는 저항의 상징이자, 파일럿 미카즈키 오거스의 뛰어난 전투 감각과 연결되는 설정이죠.
감독 인터뷰에 따르면 철화단의 이야기는 신센구미와 메이지 유신을 모티브로 했다고 합니다(출처: 건담 공식 포털). 그러니까 처음부터 비극적 결말을 예정하고 만든 작품이었던 거죠. 걀라르호른의 뿔피리가 울리면서 악마 발바토스가 깨어났다는 상징적 연출도, 결국 세상 종말을 예고하는 신호였던 셈입니다. 저는 이 설정이 참 잘 짜여 있다고 생각했는데, 정작 이야기 방향은 제 기대와 달라서 아쉬웠습니다.
- 발바토스는 솔로몬의 72 악마 중 8번째 악마 바르바토스에서 이름을 따왔습니다.
- 바르바토스는 원래 천사였으나 타락했고, 웅변과 저항의 상징으로도 해석됩니다.
- 작중에서 발바토스는 총 8가지 형태로 변화하며, 가장 다재다능한 건담 프레임으로 묘사됩니다.
- 제작진은 신센구미를 모티브로 삼아 철화단의 비극적 결말을 처음부터 염두에 뒀습니다.
아뢰야식 시스템, 악마와 계약한 대가
발바토스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게 아뢰야식 시스템(Alaya-Vijnana System)입니다. 이건 파일럿의 척추 신경을 모빌슈트(MS)에 직접 연결해서 기체를 조종하는 인간-기계 인터페이스로, 불교 용어 '아뢰야식(阿賴耶識)'에서 따온 이름입니다. 아뢰야식은 산스크리트어로 '모든 것을 간직하는 여덟 번째 마음'을 뜻하는데, 쉽게 말해 인간의 잠재의식 같은 개념이죠. 건담이 파일럿의 의지를 그대로 반영해서 움직인다는 점에서 뉴타입의 사이코뮤 시스템과도 비슷합니다.
문제는 이 시스템이 파일럿에게 엄청난 부담을 준다는 겁니다. 아뢰야식 수술을 받으면 등 뒤에 포트를 심어서 기체와 직접 연결되는데, 조종석이 완전히 밀폐되고 파일럿은 건담의 카메라로 보는 시야를 공유합니다. 수술을 세 번 받으면 재앙 전쟁 시절 건담의 진짜 성능을 끌어낼 수 있지만, 그만큼 신체 손상 위험도 커집니다. 실제로 CGS 같은 조직은 소년병들에게 불법으로 이 수술을 강요했고, 실패하면 사망하거나 평생 장애를 안고 살았죠.
미카즈키는 세 번 수술을 받고도 살아남았지만, 대가는 참혹했습니다. 시즌 1에서 리미터를 해제하고 전투했더니 오른팔과 오른쪽 눈 시신경이 망가졌고, 시즌 2에선 오른쪽 다리까지 마비됐습니다. 그나마 발바토스에 타면 신경이 일시적으로 복구돼서 움직일 수 있었지만, 내리면 다시 불구가 되는 거죠. 제가 보기엔 이게 딱 악마와의 계약 같았습니다. 힘을 얻는 대신 자기 몸을 담보로 내놓는 거니까요. 처음엔 멋있어 보였는데, 나중엔 그냥 미카즈키가 전투 기계로만 보여서 동정심조차 안 들더라고요.
진화하는 건담, 루프스에서 루프스 렉스까지
발바토스의 또 다른 매력은 작중에서 계속 형태가 바뀐다는 점입니다. 건담 프레임(Gundam Frame)이라는 공통 골격 구조 덕분에 다른 MS의 장비와 갑옷을 자유롭게 갈아 끼울 수 있거든요. 빌드 파이터즈처럼 건프라를 커스텀하는 느낌이랄까요. 실제로 반다이는 해외 시장, 특히 중국 시장을 노리고 이런 설정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리먼 쇼크와 동일본 대지진 이후 일본 국내 시장이 어려워지자 해외로 눈을 돌린 거죠.
발바토스는 총 8가지 형태로 등장합니다. 처음엔 CGS 기지 전원으로 쓰이던 낡은 상태였다가, 걀라르호른과 싸우면서 격파한 그레이즈(Graze)의 장갑을 어깨에 달고, 왼팔에 와이어 클로를 장착하고, 나중엔 테이와즈 기술자들이 재앙 전쟁 당시 모습으로 복원해 줍니다. 4형태가 가장 유명한데, 외형도 깔끔해지고 출력도 크게 올랐죠. 5형태는 몽타크 상회가 노획 부품으로 튜닝해서 가슴에 반응 장갑, 팔에 건틀릿, 팔꿈치에 박격포까지 달았습니다. 프레임이 노출된 디자인은 건담보다 서양 메카닉에 가까워 보였는데, 개인적으로 이 느낌이 참 마음에 들었습니다.
시즌 2에선 발바토스 루프스(Lupus)가 등장합니다. 루프스는 라틴어로 '늑대'를 뜻하는데, 6형태를 계승하면서도 어깨에 철화단 마크가 새겨지고 팔이 길어졌습니다. 곡선 외장으로 피격 충격을 흡수하도록 설계됐고, 출력 증가를 위해 보조 콘덴서까지 달았죠. 마지막 형태인 루프스 렉스(Lupus Rex)는 MA 하슈말과 싸우다 크게 망가진 루프스를 재건한 버전입니다. 렉스는 라틴어로 '왕'이니까 '늑대 왕'이라는 뜻인데, 솔직히 늑대보단 티라노사우루스 렉스 같은 공룡 느낌이었습니다. 다리가 중세 악마 바포메트(Baphomet)처럼 구부러져서 악마적인 이미지가 더 강해졌고, 꼬리 날 같은 장비도 달렸습니다.
루프스 렉스는 리미터를 해제해도 기체에 무리가 덜 가도록 개선됐고, 미카즈키의 전투 스타일에 맞춰 관절도 바뀌었습니다. 대신 다재다능함은 좀 희생됐고, 미카즈키가 반신불수 상태라 조종석 진입도 어려워서 해치가 가슴 앞으로 옮겨졌죠. 제가 직접 루프스 렉스 건프라를 조립해 봤는데, 디테일이 정말 좋더라고요. 다만 이 멋진 기체가 마지막엔 다인슬레이브에 맞아서 참수당하는 결말을 맞이한다는 게 너무 씁쓸했습니다. 썬더볼트의 풀 아머 건담 최후처럼 뒷맛이 정말 안 좋았어요.
철혈의 오펀스는 기체 디자인이나 액션, 실탄 무기 설정 같은 건 정말 개취였습니다. 하지만 비둘기가 등장하는 순간부터 남은 애정마저 식어버렸죠. 제 생각엔 미카즈키가 철화단의 이익에 눈먼 어른들에게 환멸을 느끼고, 로빈 후드처럼 혼자서 약자를 지키다 처절하게 죽어서 그 정신이 전승으로 남는 이야기였다면 훨씬 좋았을 것 같습니다. 그저 비극의 연속일 뿐, 어떤 대의나 희망도 없이 허무하게 끝나는 게 너무 아쉬웠거든요. 건담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보면 재미있는데, 건담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으니 기대치가 달라서 더 실망스러웠습니다.
---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fTFRhBBRhuU발바토스, 철혈의오펀스, 건담프레임, 아뢰야식시스템, 루프스렉스, 솔로몬72악마, 건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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