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펄스 건담 (페이크 주인공, 실루엣 환장, 프라모델 품질)
솔직히 저는 건담 시드 데스티니를 보면서 '페이크 주인공'이라는 개념을 처음 알게 됐습니다. 첫 등장부터 퍼스트 건담과 V건담의 오마주가 느껴져서 '이번엔 제대로 된 신규 주인공이구나' 싶었는데, 후반부로 갈수록 뭔가 어긋나기 시작하더군요. 임펄스 건담이라는 기체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분명 스트라이크 건담의 콘셉트를 계승한 멋진 설정인데, 작품 안에서도 팬덤에서도 점점 밀려나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페이크 주인공 신 아스카와 임펄스의 탄생 배경
임펄스 건담은 코즈믹 에라 71년, 제2차 야킨 두에 공방전 이후 체결된 유니우스 조약의 산물입니다. 이 조약은 미라주 콜로이드(Mirage Colloid)와 핵 탑재를 금지하고 모빌슈트 보유 대수까지 제한했는데, 여기서 미라주 콜로이드란 기체를 투명하게 만드는 스텔스 기술을 뜻합니다. 쉽게 말해 적에게 들키지 않고 기습할 수 있는 능력이죠. 자프트는 조약 파기를 예상하고 군비 증강을 서둘렀지만, 핵 엔진 대신 배터리 방식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제가 처음 임펄스를 봤을 때 가장 인상 깊었던 건 코어 스플렌더(Core Splendor), 체스트 플라이어(Chest Flyer), 레그 플라이어(Leg Flyer) 세 개로 분리됐다가 합체하는 구조였습니다. 이건 단순한 멋을 위한 설정이 아니라, 유니우스 조약의 모빌슈트 보유 대수 제한을 회피하기 위한 꼼수였습니다. 파츠만 갈아끼우면 전투 불능 상태를 즉시 복구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었죠. 다만 생각보다 단가가 높아서 양산은 어려웠다고 합니다(출처: 반다이 코리아).
임펄스는 VPS 장갑(Variable Phase Shift Armor)이라는 신기술을 탑재했는데, 이건 기존 페이즈 시프트 장갑을 개량한 겁니다. VPS 장갑은 에너지 배분을 조절해 방어력을 임의로 변환할 수 있어서, 필요한 부위만 강화하거나 에너지를 절약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이 설정이 정말 병기다운 느낌을 줬다고 생각합니다. 시드 시리즈 기체들이 전설 등급 유니크 아이템처럼 화려한 색깔 놀이에 치중했던 것과 달리, 임펄스는 '이건 무기'라는 느낌이 확실했거든요.
실루엣 환장 시스템과 뉴트리온 빔 송전
임펄스의 핵심은 실루엣 환장 시스템(Silhouette System)입니다. 자쿠 워리어의 위저드 시스템을 개량한 이 기술은 포스(Force), 소드(Sword), 블래스트(Blast) 세 가지 실루엣을 전투 중에도 무인기 '실루엣 플라이어'를 통해 교체할 수 있게 해줬습니다. 실루엣이란 백팩(backpack) 형태의 환장 유닛을 뜻하는데, 쉽게 말해 미션에 따라 장비를 갈아끼우는 시스템이죠.
제가 직접 프라모델을 조립해보니 이 환장 시스템이 얼마나 까다로운지 실감했습니다. 백팩마다 색깔이 따로 변해서 따로 사야 했고, 제타 건담이나 더블 제타처럼 완전변형·합체가 아니라 어정쩡하게 엎드린 체스트 플라이어 때문에 어색함이 더 심했습니다. 합체 기체의 매력은 있는데 완성도는 아쉬웠던 거죠.
- 포스 실루엣: 프리덤급 비행 능력과 기동성을 자랑하며, 바주라 빔 사벨을 추가 무장으로 장착합니다.
- 소드 실루엣: 근접전용으로 엑스칼리버 대함도와 플래시 엣지 빔 부메랑을 갖추며, 엑스칼리버는 이도류 또는 연결해서 언빔 텍스 폼으로 사용 가능합니다.
- 블래스트 실루엣: 대함대·요새 공격용으로 켈베로스 고에너지 장사정 빔포, 4연장 미사일 런처, 델피니우스 초고속 레일포를 장비합니다.
임펄스는 핵 엔진을 쓸 수 없어서 에너지 소모가 심했습니다. 그래서 모함 미네르바로부터 뉴트리온 빔(Deuterion Beam)을 받아 에너지를 충전하는 송전 시스템을 사용했죠. 뉴트리온 빔이란 무선으로 에너지를 전송하는 기술인데, 이 때문에 임펄스는 코어 스플렌더와 미네르바가 있어야 제 성능을 발휘할 수 있었습니다. 이걸 '임펄스 시스템'이라고 부릅니다. 개인적으로 이 설정이 임펄스를 단독 슈퍼로봇이 아닌 전술 병기로 느껴지게 만든 요소라고 봅니다.
프라모델 품질 논란과 인기 저조의 아이러니
신 아스카의 활약에도 불구하고 임펄스는 작품 안팎에서 인기가 저조했습니다. 저도 작품을 보면서 '왜 이렇게까지 밀려나야 하나' 싶었는데, 돌이켜보면 인기 없는 게 어쩌면 당연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팬들은 시드에서 50화 넘게 함께한 전작 주인공들에게 깊게 감정이입하고 있었고, 그런 이들에게 날을 세우는 신이 곱게 보일 리 없었죠. 게다가 임펄스의 콘셉트는 사실 스트라이크를 그대로 답습한 거라 신선함도 덜했습니다.
결정적으로 프라모델 품질 문제가 컸습니다. 시드 데스티니 기획 당시 촉박한 준비 기간 탓에 임펄스 프라모델 품질이 매우 낮았고, 출시 당시 대폭 할인에도 팔리지 않는 악성 재고가 됐습니다. 초기에는 60분의 1 스케일을 제외하고 품질이 형편없었고, MG 프리덤이나 제타 건담 같은 인기 기체에 밀려 더욱 외면받았습니다. 제가 당시 모형 매장에서 직접 봤을 때도 임펄스는 할인 코너 한구석에 쌓여 있었던 기억이 납니다.
다행히 2008년 마스터 그레이드(MG) 이후 출시된 제품들은 품질이 훌륭해졌습니다. MG, HG, RG 모두 각자의 개성이 강해서 선택의 폭도 넓어졌죠. 하지만 여전히 키라의 등장으로 인한 인기 저조와 블래스트 임펄스의 한정 판매로 인한 구하기 어려움은 문제로 남았습니다. 2004년 시드 데스티니 방영 당시 반다이가 MG 프리덤 건담을 출시하면서 세컨드 스테이지 프라모델들이 묻혀버린 '팀킬' 사례는 지금 봐도 아쉽습니다.
작품 안에서도 신 아스카의 성장 서사가 제대로 완성되지 못했습니다. 스폰서의 요구로 후반부 키라가 스트라이크 프리덤으로 주역을 장악하면서 신의 역할이 축소됐죠. 토미노 감독이 제타 건담에서 스폰서의 아무로 전용 건담 탑승 지시를 디제이(감마 건담)로 현명하게 극복한 것과 대조적입니다. 임펄스는 신의 집념을 보여준 기체였는데, 데스티니 임펄스로 넘어가면서 신이 맛이 갔고 주역에서 밀린 주연을 보여주는 기체가 돼버렸습니다. 개인적으로 34화 '악몽'에서 신이 키라를 상대로 임펄스 시스템을 활용해 승리를 거둔 장면만큼은 완벽했다고 생각합니다. 코어 스플렌더를 체스트 플라이어 사출 후 폭파하는 기체 활용법은 작품의 설정을 정말 잘 살린 연출이었으니까요.
결국 임펄스 건담은 기술적으로는 흥미로운 설정을 갖췄지만, 작품 내 역할과 상업적 흥행 양쪽에서 아쉬움을 남긴 기체가 됐습니다. 저는 임펄스가 병기로서의 모빌슈트를 확실하게 보여줬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하고 싶습니다. 다만 컬러링 문제로 건담처럼 보이려고 흰파빨 데칼을 과하게 해버린 탓에 병기로서의 매력이 죽고, 그 매력이 죽으니 주인공의 성격과도 안 맞아서 더욱 아쉬웠습니다. 만약 임펄스가 좀 더 절제된 디자인이었다면, 신 아스카라는 캐릭터의 성장과 더 잘 어울렸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도 이 작품의 인연으로 신 아스카와 루나마리아 호크 성우가 결혼했다는 사실은, 팬으로서 정말 기쁜 결과였습니다.
---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gsCqQO3GfnQ임펄스 건담, 건담 시드 데스티니, 신 아스카, 실루엣 환장 시스템, 세컨드 스테이지, 건담 프라모델, ZGMF-X56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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