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담 AGE 실패 원인 (미디어믹스, 타겟층, 스토리구성)
건담 AGE의 평균 시청률은 2.56%였습니다. 같은 시리즈인 건담 SEED가 6%, 더블오가 4%를 기록했던 것과 비교하면 참담한 수치죠. 저는 애니메이션을 끝까지 다 봤고 미디어 믹스 전개까지 어느 정도 따라갔던 사람인데, 지금 돌이켜보면 이 작품의 실패는 예정된 수순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모든 세대를 한 번에 잡으려던 욕심이 오히려 모두를 놓친 케이스라고 할까요.
미디어믹스 전략의 양날
건담 AGE는 레벨파이브 대표 히노 아키히로가 반다이와 선라이즈에 제안한 '리 이매지네이션 건담 시리즈' 프로젝트였습니다. 원 소스 멀티 유즈(One Source Multi Use)란 하나의 원작 콘텐츠를 다양한 매체로 확장하여 수익을 극대화하는 전략을 의미하는데, 쉽게 말해 애니메이션과 게임, 만화를 동시에 전개하면서 서로 시너지를 내겠다는 구상이었죠.
실제로 애니메이션 본편에서 부족했던 설정과 스토리를 외전 만화와 소설에서 보완하는 방식은 나름 성공했습니다. 외전 매출은 높은 편이었고, 이후 건담 작품들의 외전 기획에도 영향을 줬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치명적인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애니메이션과 PSP 게임이 동시 기획되면서 애니메이션이 완결되기 전에 게임이 먼저 출시되어 버린 겁니다.
게임으로 결말이 이미 공개된 상황에서 본방송 시청률이 좋을 리 없었죠. 저는 게임을 주로 소비하는 입장이었기 때문에 AGE를 상당히 좋아하는 편입니다. 베이건 기어 같은 경우 캡파에서 아주 흥미로운 기체로 등장했거든요. 여태껏 출시된 기체들과 전혀 다른 플레이 방식을 선보였고, 가변 후의 전투 스타일은 더욱 독특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게임의 재미가 오히려 애니메이션 본편의 긴장감을 해쳤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AGE 제작 당시 반다이 공장 설비 여력 부족으로 더블오 건담 후기 기체 개발이 취소된 점도 팬들 사이에서 악감정을 키웠습니다(출처: 유튜브 분석 영상). 결국 미디어 믹스 전략은 규모의 경제를 노렸지만, 시나리오 수정이 불가능한 구조적 한계를 스스로 만들어버린 셈이었습니다.
타겟층을 잃어버린 기획
건담 AGE의 가장 큰 실패 요인은 타겟층 설정의 혼란이었습니다. 제작진은 4~12세 어린이와 기존 건담 팬을 동시에 잡으려 했지만, 결과적으로 둘 다 놓쳤죠. 4~12세 아동 시청률은 측정조차 불가능할 정도로 낮았고, 청소년 시청률은 1.01%로 역대 최악이었던 더블오 세컨드 시즌보다도 낮았습니다.
솔직히 건담이 애초에 애들 보는 작품이 아닌데 무리하게 어린이층까지 끌어들이려 한 게 패착이 아닐까 싶습니다. 맨 처음 원작 퍼스트 건담 1화부터 인구 절반이 죽고 시작하는 작품인데요. AGE 역시 초반에는 어린이 취향 캐릭터 디자인으로 포장했지만, 결혼, 복수, 의지 전달 같은 주제는 명백히 성인층에 더 적합한 소재였습니다.
제 생각엔 차라리 나이를 조금 올려서 20대를 타겟으로 만드는 게 나았을 것 같습니다. 실제로 수성의 마녀는 말이 많긴 했어도 현재 20대들이 좋아하는 요소에 건담을 잘 버무리는 데 성공했고, 어느 정도 신규 유입도 이뤄냈잖아요. AGE는 어린이를 위한 작품이라고 하면서 3세대에 걸친 방대한 캐릭터 수를 쏟아냈는데, 아이들이 이걸 어떻게 기억하고 따라갈 수 있겠습니까.
타겟층 혼란은 다음과 같은 결과를 낳았습니다:
- 어린이는 복잡한 세대 구성과 많은 등장인물 때문에 중간에 이탈했습니다
- 기존 건담 팬은 과도한 오마주와 왕도 시나리오의 반복으로 식상함을 느꼈습니다
- 청소년층은 어린이용 캐릭터 디자인에 거부감을 느꼈습니다
결국 최종적으로 남은 시청자는 끝까지 지켜보는 충성도 높은 기존 건담 팬뿐이었고, 그마저도 만족도는 낮았던 겁니다.
스토리구성과 분량 배분의 실패
작품의 전체적인 시나리오 틀 자체는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3세대가 이야기를 이끌어간다는 시도도 신선했고, 1부에 가득한 퍼스트 건담에 대한 오마주도 저는 즐거웠거든요. 능력이 없는 주인공 아셈이 노력으로 능력자들과 싸워 이긴다는 2부 내용도 나름의 카타르시스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3부는 다른 것보다 너무 재미가 없더라고요.
제가 포기한 게 FX 등장 직전 화였으니, 신 기체 등장으로도 메꿀 수 없던 노잼의 맛이었습니다. 원래 6쿨(약 72화) 기획이었던 작품이 4쿨(49화)로 축소되면서 분량 문제가 심각해졌죠. 1부 15화, 2부 13화, 3부 11화, 4부 10화로 갈수록 짧아지는 구성이었는데, 이 때문에 플리트가 복수귀로 변모하는 과정이 제대로 그려지지 않았습니다.
각 세대별로 70년대 슈퍼 로봇물, 80년대 리얼 로봇물, 90년대 용자 로봇물의 플롯을 오마주했다는 건 흥미로운 시도였지만, 오히려 과거 명작의 요약본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들어 기존 팬들에게는 지루하게 느껴졌습니다. 유림 같은 캐릭터는 등장과 동시에 운명이 예측 가능했고, 이런 식의 전개는 시청자에게 식상함만 안겨줬죠.
저는 애니메이션을 다 보고 미디어 믹스 전개도 따라가다 보니 드는 생각이지만, 1대·2대·3대를 순차적으로 보여줄 게 아니라 키오의 스토리를 중심으로 각 인물들의 현재 관계와 모습을 먼저 보여주고 나서 과거 회상 식으로 주요 내용만 담았다면 어땠을까 싶습니다. 대신 다른 미디어 믹스는 1대·2대·3대를 순차적으로 디테일하게 보여주는 거죠. 그러면 애니메이션만 주로 보는 아이들은 상대적으로 쉬운 내용에 등장인물도 적으니까 이해하기 쉬웠을 거고, 디테일한 내용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미디어 믹스를 사서 봤을 겁니다.
아셈과 제하트의 대립 관계가 2부의 백미였는데, 제하트의 최후 전투는 허무하게 끝났고 최종 보스 제라 긴스는 최종화에 갑자기 등장해서 몰입을 방해했습니다. 하나의 일관된 이야기라기보다 각기 다른 테마의 이야기를 억지로 합쳐 놓은 듯한 인상이었죠. 6쿨로 각 세대에 2쿨씩 투자해서 이야기를 좀 더 탄탄하게 쌓아 올렸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히노 감독은 이런 단점을 파악하고 후속작 '메모리 오브 에덴'에서 개선을 시도했지만, 본편을 봐야 이해 가능한 구조였기 때문에 판매량은 좋지 못했습니다. 결국 AGE는 모든 세대, 다양한 미디어를 한 번에 잡으려는 지나친 욕심이 실패의 원인이었습니다. 어린이를 버리고 청소년·청년을 대상으로 만들었다면, 결혼과 복수 같은 무거운 주제도 자연스럽게 소화할 수 있었을 텐데 말이죠. 제작 당시 건프라 판촉용 애니메이션임에도 핵심 세일즈 포인트인 'AGE 빌더' 묘사가 분량 문제로 부족했던 점도 상품 전략 실패의 한 원인이었습니다.
---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_l4hnlgPHsY건담AGE, 기동전사건담AGE, 미디어믹스, 애니메이션제작, 레벨파이브, 히노아키히로, 건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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