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담 마크2 (무버블 프레임, 슈퍼 건담, 티탄즈)

87년 당시 문방구에서 3,500원짜리 아카데미 건담 마크2 프라모델을 손에 쥐었던 순간을 아직도 기억합니다. 퍼스트 건담의 하얀 영웅 이미지를 깨고 등장한 검은 건담, 저는 그 충격적인 색감보다 오히려 군더더기 없이 빠진 실루엣에 매료됐습니다. 제타 건담이 변형이라는 혁신적인 개념을 들고 왔다면, 마크2는 디자인 그 자체로 완성도를 보여준 기체였죠.

티탄즈의 상징으로 태어난 검은 건담

건담 마크2가 왜 검은색이었는지 아시나요? 우주세기 0083년 데라즈 분쟁 이후 지구 연방군은 지온 잔당 소탕을 명분으로 티탄즈라는 특수부대를 창설했습니다. 티탄즈(Titans)란 지구 우월주의 사상을 가진 엘리트 부대를 뜻하는데, 이들은 스페이스 노이드를 과도하게 탄압하며 정치적 반감을 샀습니다.

마크2는 표면적으로는 범용 다목적 MS 개발 프로젝트였지만, 실제로는 티탄즈의 권위를 상징하기 위해 제작된 기체였습니다. 토미노 감독이 전작과 철저히 다른 작품을 만들고자 했던 의도가 여기서 드러나는데, 하얀 건담은 더 이상 영웅이 아니었고 검은 건담이 적군의 손에 있다는 설정 자체가 당시 시청자들에게 큰 충격을 줬습니다.

개발 과정도 독특했습니다. 1년 전쟁 당시 지온계 기술이 우수했음에도 불구하고, 지온 잔당 소탕이 목적이었기에 오직 연방계 기술자와 기술만 투입됐습니다. 기체형 번호도 RX-78에 1만을 더한 RX-178이 된 것은 순전히 상징성 때문이었죠. 카미유 비단의 아버지 프랭클린 비단을 포함한 당시 최고 수준의 연방군 기술 인력이 투입됐고, 스페이스 콜로니 내 전투를 상정하여 설계됐습니다.

무버블 프레임이라는 혁신

마크2의 가장 큰 기술적 성과는 바로 무버블 프레임(Movable Frame)입니다. 무버블 프레임이란 장갑이 없는 뼈대 상태에서 움직일 수 있도록 설계한 뒤 장갑을 씌우는 개념으로, 마크2가 최초로 도입했습니다(출처: 건담 공식 포털). 쉽게 말해 사람의 골격처럼 프레임 자체가 관절 운동을 하고, 그 위에 외장 장갑이 슬라이드되며 따라오는 구조입니다.

이 방식의 장점은 명확했습니다. 외부 장갑이 슬라이드되고 무게가 가벼워 기동성이 향상됐으며, 가속 시 장갑 부하도 줄었습니다. 디자이너 나가노 마모루의 아이디어로 탄생한 이 외장 슬라이드 개념은 그의 작품 '파이브 스타 스토리'의 모터 헤드에도 적용될 만큼 참신했습니다.

다만 약점도 있었습니다. 지온 기술 배제 정책으로 인해 기존의 티탄합금 세라믹 복합재를 장갑 재료로 사용했는데, 자재가 무르다는 약점 때문에 충격에 약하고 구동부가 잘 망가지는 단점이 있었습니다. 최근 '제타 건담 디파인'에서는 장갑이 평범한 재질이지만 박층 구조로 되어 있어 빔 공격에 강하다는 설정이 추가되기도 했습니다.

제가 직접 프라모델을 조립하면서 느낀 건, 무버블 프레임 덕분에 관절 가동 범위가 넓어 다양한 포즈를 잡을 수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당시 다른 건프라들이 팔다리 각도 조절도 어려웠던 것과 비교하면 혁신적이었죠.

슈퍼 건담과 디펜서 합체

그리프스 전역 후기에 마크2는 디펜서(Defenser)와 결합하여 '슈퍼 건담'으로 불렸습니다. 디펜서란 마크2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개발된 추가 장비 유닛으로, 화력·방어력·항속거리를 크게 향상시켰습니다. 롱 레인지 라이플을 장착하며 최신 개량 기체에 준하는 성능을 보여줬죠.

하지만 무게 증가로 기동성이 떨어지고 접근전에 취약해지는 단점도 생겼습니다. 토미노 감독이 '슈퍼 건담'이라는 유치한 이름을 싫어했다는 후문도 있는데, 작중 취급도 좋지 않았습니다. 카즈의 사망, 하이퍼 메가 런처와의 교체 등 비운을 겪었고, 결국 그리프스 전역 종반 파라스 아테네를 격파하는 과정에서 기체가 파괴됐습니다.

개인적으로 슈퍼 건담 형태는 디자인적으로 호불호가 갈렸습니다. 덕지덕지 붙은 장비들이 마크2 본래의 세련된 실루엣을 해친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는데, 저는 오히려 실용성을 위해 미학을 희생한 설정이 현실적이라고 느꼈습니다.

프라모델로서의 전설

마크2는 TV판에서 가짜 주인공이었음에도 프라모델 시장에서는 진짜 주인공이었습니다. 제가 87년에 처음 산 아카데미 마크2는 무장도 파츠도 내구성도 평균 이상이라 마개조나 연습용으로 참 좋았습니다. 용돈 받으면 문방구 달려가고, 친구가 마크2 샀다는 얘기만 들어도 만들어주겠다며 조립을 대신 해줬던 추억이 있습니다.

TV판과 동시에 발매된 HGUC 키트는 반다이의 첫 독자 프라모델 프로젝트였기에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기술이 아낌없이 투입됐습니다. 다음과 같은 특징들이 대표적입니다.

  1. 이중 관절 구조로 무릎과 팔꿈치 가동 범위 확대
  2. 금속 샤프트 사용으로 내구성 향상
  3. 폴리캡(Polycap) 도입으로 관절 마모 최소화

제타 건담 모형들이 변형 구현의 어려움으로 품질이 들쭉날쭉했던 것과 대조적으로, 마크2는 평균 이상의 완성도를 보여줬습니다. 실제로 반다이가 변형 관련 노하우 부족으로 제타 건담 프라모델 개발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급하게 마크2가 투입되어 작품의 첫 주역 기체 역할을 맡게 된 뒷이야기도 있습니다.

1기 오프닝에 제타 건담이 실루엣으로만 등장하는 것도 이 때문인데, 그 실루엣조차 우리가 아는 제타 건담과 다릅니다. 방영 당시 마크2의 존재감이 얼마나 컸는지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저는 뉴건담과 함께 마크2를 가장 좋아하는 디자인으로 꼽습니다. 온갖 자극적인 디자인의 건담들이 새롭게 선보였지만, 이 된장찌개 같은 마크2는 언제 봐도 좋습니다. 발칸포드 시스템을 보면 초기에 기관포가 없어 별도의 기관포드를 장착했던 F-4 팬텀2가 떠오르는데, 톰캣과 비유할 제타와 함께 당시 설계 컨셉을 느낄 수 있습니다. 가장 혁신적인 디자인은 제타이고, 가장 군더더기 없는 잘 빠진 디자인은 마크2라는 게 제 생각입니다. 퍼스트 건담의 디자인을 상당 부분 유지하면서도 세련되고 균형 잡힌 모습, 어쩌면 우주세기 중에서 마크2와 제타가 가장 우수한 디자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평범함에서 오는 매력이 있고, 필요 이상으로 화려하지 않은 절제미가 30년 넘게 현역으로 사랑받는 이유가 아닐까요. 건프라를 처음 접하는 분이라면 마크2부터 시작해보시길 권합니다. 조립 난이도도 적당하고, 완성 후 만족도도 높으니까요. 

 ---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aD1EW2DL-KU&t=1s

건담 마크2, 무버블 프레임, 티탄즈, Z건담, 슈퍼 건담, 건프라, 디펜서

댓글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건담 F91의 기술혁신 (소형화, 베스바, 메탈피어)

백식의 진실 (샤아의 실력, 기체 성능, 모형 코팅)

데스티니 건담의 모든 것 (개발배경, 무장특징, 프라모델)